문헌사료

민주공원에는 7만여 건에 달하는 문헌사료가 보관 중입니다. 이들 문헌사료는 부산 지역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역사는 물론 부산 지역 시민사회운동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큽니다. 문헌 사료의 경우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동시에 기증처도 다양하여 쉽게 정리하기 힘들지만 주제와 사용처에 따라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민주화운동 · 노동운동 관련 재판기록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는 인권변호사의 시대였습니다. 6월항쟁 이후에도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고 공안기관을 중심으로 한 억압은 6월항쟁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민주화운동가들은 물론 학생운동가, 노동운동가들은 끊임없는 체포와 투옥의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이들을 도운 인권변호사들이 있었기에 그들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민주공원 사료실에는 당시 민주화운동가들을 위해 변론을 펼친 부산·울산·경남 지역 인권변호사들의 피땀이 어린 재판기록들이 소장 중입니다. 이들 재판기록은 총 200권에 달하며 부울경 지역의 노동운동 · 학생운동 투사들과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활약한 법무법인 부산을 중심으로 한 변호사들의 투쟁기록을 담고 있는 소중한 사료입니다. 다만 개인정보 노출 우려 등으로 인해 사료 대부분을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산수 이종률 선생 관련 사료

산수 이종률 선생은 1902년 경북 포항 태생으로 일제 치하에서 어려서부터 학생운동과 청년운동에 활발히 참여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선생은 일제 치하에서 일제경찰의 감시와 체포에 시달렸으나 많은 청년단체와 신간회와 같은 대중단체, 근우회와 같은 여성단체의 설립과 활동을 지원하며 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해방이 되자 선생은 백남운 등과 함께 조선학술원 설립을 주도하는 등 학술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에스페란토 보급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이후 분단이 가시화되자 민족건양회를 조직하는 한편 이극로, 조봉암 등과 함께 민주주의독립전선을 조직하여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투쟁하였습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선생은 부산으로 피난하여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부산대, 동아대 등의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했으며 명강의로 많은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습니다. 선생은 부산에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김정한, 이주홍 등 부산의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청년들을 규합하여 민족문화협회를 창립, 민족 자주 의식을 지역사회에 고취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언론인으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여 부산대학교의 학생신문인 『부대신문』의 초대 주간 교수를 맡았으며 『부산일보』와 『국제신보』의 논설고문을 지냈고 『영남일보』의 논설위원과 편집국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부산 지역 사회에서 선생의 활발한 활동은 지역의 학생, 청년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쳐 선생이 주창한 민족혁명론 학맥이 형성되었습니다. 1960년 4.19혁명이 발발하고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선생은 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적 청년층의 결집을 추진하여 6월 12일 부산에서 선생의 제자들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민주민족청년동맹이 결성되었습니다. 민주민족청년동맹은 이후 서울로 지도부를 옮기고 전국적인 단체로 성장하였는데 이는 부산 지역의 청년운동이 전국단위 운동으로 성장한 드문 사례입니다. 이후 선생은 통일운동의 확산을 위해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민족통일연맹의 창설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민족일보’의 창간에도 참여하여 초대 편집국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선생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건강 악화로 가석방된 선생은 양산의 개운중학교 교감으로 취임하여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자 했지만 고문후유증으로 인해 1974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이후 병상에서도 끈질기게 강의를 이어나갔지만 결국 1988년 3월 13일 부산 동래의 자택에서 영면하였습니다. 민주공원에는 이종률 선생이 평생에 걸쳐서 남긴 문헌자료들이 정리되어 보관 중입니다. 이들 자료에는 선생의 마지막 역작인 『기미를 알자』에서부터 각종 원고들 일제강점기에서 독재치하에 이르는 시기 정치와 사회, 그리고 대중운동에 대한 선생의 평론과 방향제시에 관한 논설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종률 선생의 유고는 당시의 시대상과 민주화운동의 방향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담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며 민주공원은 이들 유고를 중요한 사료로 간주하여 원고 단위로 문서철에 나뉘어 보관 중이며 그 수는 141종이고 페이지로 분류할 경우 만 단위에 달합니다.

인혁당 · 민청학련 관련 사료

인혁당 사건, 나아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8명의 민주화운동가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사법살인 사건이었습니다. 민주공원에는 당시의 충격적인 사법살인에 관한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의 냉혹함을 담고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사료는 인혁당 희생자 유족들이 설립한 4.9평화재단과의 협의에 따라 임시로 민주공원에 수탁형태로 보관 중입니다. 또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유신독재정권의 긴급조치 4호 선포의 결정적 계기가 된 민청학련 사건과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기에 민주공원은 인혁당 관련 사료를 수탁하는 과정에서 민청학련 관련 사료 또한 함께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두 종류의 사료는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의 냉혹한 본질과 이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투사들의 헌신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민주공원에 보관 중인 인혁당 · 민청학련 총 1917건에 달하며 주제 별로는 인혁당이 893건 민청학련이 1011건, 기타가 13건입니다. 생산기관으로는 경찰 생산자료가 359건, 검찰생산자료가 538건, 재판부에서 생산한 자료가 325건, 행정기관(구치소, 우체국 등)에서 생산한 자료가 26건, 피고인 · 변호인 등이 생산한 자료가 381건, 기타 생산기관이 11건, 미상 77건입니다.

노동자를 위한 연대 관련 사료

노동자를 위한 연대는 1994년 4월 8일 부산에서 설립된 단체로 노동자와 실업자, 저소득층의 권익을 옹호하고 노동조합의 운영을 지원하고 노사협의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노동자를 위한 연대는 기존의 노동단체들이 주로 노동조합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것과 달리 노동자와 소규모 노동조합을 위한 법률 상담과 소송지원, 조합 활동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방법 안내 등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따라서 단체 역시 노동운동가는 물론 지역의 양심적 법조인, 의료인, 학자, 노무사, 시민운동가 등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노동자를 위한 연대는 2009년 노동인권연대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노동환경의 변화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청소년 노동자 등으로 지원대상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법률 상담 사례집』을 발행하고 지역 사회의 노동안전과 공공안전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한진중공업 등 주요 노동투쟁 현장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민주공원에는 노동자를 위한 연대에서 생산된 다양한 문헌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들 문헌에는 창립 직후부터 최근까지 부산 지역 노동운동의 역사와 노동운동과 지역 사회운동의 연대, 부산지역 노동과 안전 이슈의 변화 양상 등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지역 노동운동의 주요 이슈의 변화에 대해 순차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며 1994년 설립 이전의 80년대 노동운동 관련 자료도 다수 수록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노동자를 위한 연대 관련 문헌사료들은 총 68개의 서류함에 나눠 보관 중이며 각 서류함은 고유한 시대와 주제에 따라 나눠져 있어 열람이 편리합니다.

1970~80년대 및 6월 항쟁 시기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

민주공원에는 수많은 민주화운동 사료가 보관되어 있고 이에 따라 외부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에 수차례 정리 작업을 한 끝에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항쟁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하는 민주화운동 사료 중 중요한 사료들을 별도로 모아두었습니다. 이들 1970~80년대 및 6월항쟁 시기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는 총 20여개의 대형 파일 함에 나누어 보관되었으며 문헌의 수는 1,000여건에 달합니다. 이들 문헌에는 1970년대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의 기초를 닦은 기독교, 천주교 등 종교계의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자료에서부터 1980년대 독재정권에 의해 자행된 부림 사건, 전국에 충격을 안긴 부미방 사건, 1980년대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을 조직화하는데 큰 기여를 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활동 등에 관한 기록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사를 서술하는데 기초가 되는 사료들입니다. 또한 1987년 6월항쟁 당시 항쟁을 이끈 부산 국본과 주요 학생단체들이 생산한 사료들도 대거 포함되어 6월항쟁 연구에 있어 필수적인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부산 지역 노동 · 시민사회운동 관련 사료

민주공원에서 소장된 사료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것은 부산 지역 노동 · 시민사회운동 관련 사료입니다. 이들 사료는 민주공원을 수탁 · 운영하는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창립한 1989년부터 꾸준히 수집하고 기증받은 것으로 그 수량이 막대하여 주제별로 나뉘어 정리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노동운동 관련 사료로 4,000건이 넘으며 그 외에도 종교(16건), 청년 · 학생(208건), 정치 · 연합(432건), 통일 · 평화 · 환경(311건), 여성 · 언론출판(159), 문화 · 예술 · 교육(599건), 인권(235건), 해외(6건), 농민 · 빈민(19건), 기타 사회운동(24건)으로 매우 다양한 운동 관련 사료들이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들 사료는 1980년대 민중운동 시기에서부터 1990년대 시민운동의 형성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큽니다.

기타 사료

민주공원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유형의 사료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들 사료들은 주로 민주공원이 건립된 1999년 이후의 사료들로 크게 3부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2000년대 지역 시민사회운동 사료들로 21세기 들어 보다 다양화된 시민사회운동의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민주공원 창립 초창기 자료, 그 중에서도 공연과 기획전시 관련 프로그램들로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이고 참신한 프로그램들이기에 지역 문화사적으로 가치가 큽니다. 마지막으로는 도서류로 1970~80년대 사회과학 도서에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 각종 증언집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200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진행된 진상보고서 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 기타 사료들은 단순히 기타라고 하기에는 매우 가치가 큰 사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주공원 소장 주요 사료 설명

사료연구 담당 김호민